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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동 엽기토끼 사건-20년 만에 밝혀진 미제 연쇄살인의 전말

나니데쓰까 2026. 7. 2. 11:36

신정동 엽기토끼 사건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오랜 기간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미제사건 가운데 '신정동 엽기토끼 사건'만큼 극적인 반전을 겪은 사례도 드뭅니다. 2005년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에서 두 명의 여성이 잇따라 납치, 성폭행, 살해당한 사건과 이듬해인 2006년 또 다른 여성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납치미수 사건이 세간에 '엽기토끼 사건'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여러 차례 재조명되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고,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미제로 남아 있다가 2025년 11월 2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의 공식 브리핑을 통해 마침내 진범이 특정되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사건의 발생 배경, 각 사건의 세부 경위, 20년에 걸친 수사기관의 집요한 추적 과정, 그리고 최종적으로 드러난 범행의 전모를 최대한 상세하고 정확하게 정리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사건의 결과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가 어떻게 난항을 겪었고 어떤 계기로 실마리가 풀렸는지 그 과정 하나하나를 짚어보겠습니다.

사건 개요

신정동 연쇄살인사건, 통칭 '엽기토끼 사건'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 일대에서 발생한 일련의 강력범죄를 지칭합니다. 핵심적으로는 다음의 사건들이 얽혀 있습니다.

  • 1차 사건: 2005년 6월 6일, 20대 여성이 납치·성폭행 후 살해되어 시신이 유기됨
  • 2차 사건: 2005년 11월 20일, 40대 여성이 납치·성폭행 후 살해되어 시신이 유기됨
  • 2006년 2월 사건: 동일 건물에서 다른 여성을 지하로 유인해 성폭행을 시도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건 (훗날 진범 특정의 결정적 단서가 됨)
  • 2006년 5월 사건('엽기토끼 납치미수'): 신정역 인근에서 여성이 납치되어 반지하로 끌려갔으나 신발장 뒤에 숨어 극적으로 탈출한 사건 (이 사건의 증언에서 '엽기토끼'라는 명칭이 유래함)

오랜 시간 이 네 개의 사건은 서로 연관된 하나의 연쇄범죄로 추정되었으나, 2025년 정밀 DNA 감정을 통해 1·2차 살인 사건의 범인이 특정되면서 2006년 5월의 납치미수 사건은 전혀 다른 인물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세간에 널리 알려진 '엽기토끼'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사건 자체는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으며, 오직 1·2차 살인 사건만이 20년 만에 해결된 것입니다. 이 점은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건의 무대-양천구 신정동의 지리적 특성

 

사건이 발생한 서울 양천구 신정동은 다세대주택이 조밀하게 들어선 주거 밀집 지역으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외견이 비슷한 빌라들이 줄지어 있어 방향 감각을 잃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신이 유기된 장소들은 겉으로는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골목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담벼락에 가려진 사각지대가 존재하여 야간에는 은밀한 행위를 하기에 용이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사건 이후 해당 지역에는 CCTV가 추가로 설치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1차·2차 살인 사건과 2006년의 두 사건 모두가 신정역 인근, 그리고 범인이 근무하던 빌딩 반경 내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수사 초기 단계부터 사건들 사이의 지리적 연관성을 시사하는 핵심 단서로 작용했으며, 훗날 경찰이 신정동 거주·근무 이력자를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혀가는 데에도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1차 사건-2005년 6월 6일, 감기 진료를 받으러 갔던 20대 여성

 

첫 번째 사건은 2005년 6월 6일에 발생했습니다. 피해자인 20대 여성은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으나 공휴일이라 진료를 받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 귀가하던 중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건물의 관리인으로 근무하던 범인에게 붙잡혀 지하 창고로 끌려갔습니다.

범인은 피해자의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뒤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이후 시신을 쌀포대와 비닐로 감싸고 노끈으로 결박한 다음,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인근 초등학교 골목 및 노상 주차장 인근으로 옮겨 유기했습니다. 시신은 다음 날 쓰레기 무단투기를 단속하던 공무원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수사에서는 피해자의 속옷이 벗겨졌다가 다시 정리된 흔적, 생식기관 내부에 이물질이 삽입된 정황, 가슴 부위의 물린 상처 등 강간살해의 정황이 뚜렷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감식 기술의 한계로 정액이 검출되지 않아 범인을 특정할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2차 사건-2005년 11월 20일, 실종된 40대 여성

 

두 번째 사건은 같은 해 11월 20일, 일요일이자 공휴일에 발생했습니다. 40대 여성 피해자가 외출 후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신정역 에스컬레이터의 CCTV 영상을 통해서만 확인되었습니다. 범인은 1차 사건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근무하던 건물로 피해자를 유인하여 지하로 끌고 간 뒤 금품을 갈취하고 성폭행한 후 살해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시신은 돗자리와 여러 겹의 비닐로 감싸인 채 노끈과 전기선줄로 단단히 결박된 상태로, 1차 사건 현장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주택가 노상 주차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1차 사건과 동일한 경부압박 질식사였으며, 갈비뼈 골절을 포함한 폭행 흔적과 후복막강 출혈이 확인되어 두 사건의 강한 유사성을 뒷받침했습니다. 특히 시신의 옷 옆구리 부분에서 검출된 곰팡이는 반지하 또는 지하 창고와 같은 밀폐된 실내 환경에서 옮아붙은 것으로 분석되어, 피해자가 살해 전 지하 공간에 감금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과 초기 수사의 벽

경찰은 두 사건의 유사성 경부압박 질식사라는 동일한 사인, 쌀포대·비닐·노끈을 이용한 결박 및 유기 방식, 신정역 인근이라는 발생 지역, 공휴일에 벌어졌다는 시점을 근거로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38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꾸려 8년간 탐문, 감식, DNA 대조 등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유류품에서 뚜렷한 DNA 정보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정적 물증 없이 수사는 장기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2013년, 공소시효 완성을 앞두고 장기 미제사건으로 공식 전환되었습니다.

2006년의 두 사건-혼동되기 쉬운 별개의 사건들

이 사건을 이해할 때 가장 혼동하기 쉬운 지점이 바로 2006년에 발생한 두 건의 사건입니다. 이 둘은 시기와 장소가 비슷해 오랫동안 하나의 사건으로 오인되어 왔으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인물이 저지른 별개의 범죄였습니다.

첫째, 2006년 2월 사건은 1·2차 사건의 범인이었던 건물 관리인이 같은 건물을 찾은 또 다른 여성에게 "휴일이라 건물 1층 출입문이 잠겼다"는 핑계로 접근하여 지하로 유인한 뒤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입니다. 이때 피해자의 신고와 저항으로 범인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체포 기록이 훗날 그를 1·2차 사건의 범인으로 특정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습니다.

둘째, 2006년 5월 사건이 바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엽기토끼 납치미수' 사건입니다. 20대 여성 피해자가 신정역 인근에서 전혀 다른 남성에게 납치되어 다세대주택의 반지하 방으로 끌려갔습니다. 방바닥에는 다수의 노끈이 널려 있었고 공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범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해자는 탈출을 시도했는데, 정문 밖으로 곧장 도주하는 대신 반지하 바로 위층인 2층 계단으로 올라가 신발장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범인들이 밖으로 나가 피해자를 찾는 사이, 그녀는 정신없이 도망쳐 인근 초등학교에 도착한 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이때 몸을 숨겼던 신발장 측면에 '엽기토끼'라는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는 증언이 2015년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사건과 함께 앞선 1·2차 살인 사건 전체가 '엽기토끼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러나 2025년 수사 결과, 2006년 2월 사건으로 이미 수감되어 있던 범인이 같은 해 5월에 발생한 이 납치미수 사건을 저지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명확히 확인되었습니다. 결국 '엽기토끼'라는 명칭의 실제 유래가 된 이 사건의 진범은 별도로 존재하며, 현재까지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장기 표류하던 수사-2016년 재수사 개시부터 2021년 본격 착수까지

2016년 서울경찰청이 미제사건 전담팀을 신설하면서 신정동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은 1차·2차 사건 피해자의 시신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모래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2005년 당시 서울 서남권 공사현장 관계자, 신정동 전입·전출자 등 무려 23만 1,897명을 수사 대상자로 선정하는 대규모 수사가 전개되었습니다.

경찰은 이 가운데 1,514명의 유전자를 채취하여 대조 작업을 벌였습니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 중국동포(조선족)가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는 주민들의 진술을 토대로 범인이 외국인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중국 국가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는 국제공조수사도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DNA와 일치하는 인물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증거물 재감정을 의뢰한 결과, 1차 사건 피해자의 속옷과 2차 사건 피해자를 결박한 노끈에서 검출된 유전자형이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두 살인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점은 과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었으나, 정작 그 DNA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이후 경찰은 범인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2021년부터 사망자를 포함한 본격적인 재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결정적 실마리-사망자 56명으로 좁혀진 수사망

 

경찰은 생존자 대상 수사에서 진전이 없자, 발상을 전환하여 이미 사망한 인물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세부 기준을 적용하여 관련성 있는 대상자를 압축해 나갔습니다.

선정 기준 세부 내용
지역 연고 신정동 거주 또는 직장(근무) 경력이 있는 자
피해자 관계 피해자 주변 인물
직업군 설비, 인력, 공사, 봉제업 등 종사자
근무 환경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직업 종사자
전과 이력 살인, 성폭력 등 강력범죄 전과 3회 이상
범행 시점 주간·휴일 및 특정일에 범행한 이력
사망 정황 사망(자살) 원인이 석연치 않은 대상자

 

이러한 기준을 통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된 56명이 후보군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천경찰서 기록보관실을 세 차례에 걸쳐 재수색하던 중, 한 바인더에서 2006년 2월 강간치상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인물, 즉 신정동의 한 빌딩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했던 60대 남성 장모씨의 기록을 발견하게 됩니다. 장씨는 해당 사건 이전에도 성범죄 등 강력범죄로 3차례의 전과가 있는 인물이었으며, 흥미롭게도 그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선상에 오른 적이 없었습니다. 신정동 근무 이력, 강력범죄 전과, 사건 발생 시점과의 부합성 등을 종합해 경찰은 장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하게 됩니다.

국과수 감정과 DNA 확보의 극적 과정

문제는 장씨가 이미 2015년 7월 4일 암으로 사망하여 화장까지 마친 상태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유골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찰은 그가 생전에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병의원을 일일이 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남부권의 부천, 광명, 시흥 지역 병의원 등 무려 40여 곳을 뒤진 끝에, 마침내 한 병원에서 장씨의 생전 세포 조직 검체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 검체를 정밀 감정한 결과, 1차·2차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범인의 DNA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이로써 20년간 미궁에 빠져 있던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마침내 특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2025년 11월 21일 공식 브리핑과 사건의 전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025년 11월 21일,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신재문 팀장 주재로 브리핑을 열고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당시 60대 초반이던 빌딩 관리인 장모씨로 최종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경찰이 재구성한 범행 전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씨는 자신이 관리인으로 근무하던 건물을 찾은 여성들을 관리인이라는 신분을 악용해 지하 창고로 유인한 뒤,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후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이후 시신을 쌀포대와 비닐, 노끈 등으로 결박하여 자신의 차량에 싣고 초등학교 인근과 주택가 노상 주차장으로 옮겨 유기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다만 장씨가 2015년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찰은 형사소송법상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송치 종결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범인의 생사와 관계없이 장기 미제 사건을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밝히며, "오랜 시간 경찰을 믿고 기다려주신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사건 일지 총정리

시기 내용
2005년 6월 6일 1차 사건 발생, 20대 여성 피해 (익일 시신 발견)
2005년 11월 20일 2차 사건 발생, 40대 여성 피해 (실종 후 시신 발견)
2005~2013년 양천경찰서 전담수사팀 38명, 8년간 수사
2006년 2월 장씨, 동일 건물에서 성폭행 시도하다 현행범 체포·구속 (별개 사건)
2006년 5월 '엽기토끼 납치미수' 사건 발생, 피해자 극적 탈출 (별개 사건, 현재까지 미제)
2013년 신정동 연쇄살인사건 장기 미제사건 전환
2015년 7월 4일 장씨, 암으로 사망 후 화장
2015년 10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엽기토끼 사건'으로 대중에 널리 알려짐
2016년 서울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 재수사 개시, 23만여명 수사대상자 선정
2016·2020년 국과수 재감정, 1·2차 사건 동일범 소행 과학적 확인
2021년 사망자 포함 본격 재수사 착수
2025년 11월 2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장씨를 진범으로 최종 특정 공식 발표

사건의 사회적 파장과 미디어의 역할

이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05회 '엽기토끼와 신발장 -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퍼즐' 등 여러 차례의 방영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얻었습니다. 특히 2015년 10월 방송에서 생존자가 직접 증언에 나서면서 사건의 실체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는 훗날 경찰의 재수사에도 사회적 관심과 압력이라는 형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평가됩니다. 다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방송에서 다룬 '엽기토끼' 사건과 실제 해결된 1·2차 살인 사건이 서로 다른 범인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그동안의 대중적 인식과 실제 수사 결과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했다는 점도 확인되었습니다.

유사 사건과의 연관성 논란

수사 과정에서 신정동 사건과 수법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여러 사건이 동일범 소행이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6년 12월 8일 발생한 인천 부평구 굴포천 마대자루 살해 및 시체유기 사건이 언급되었는데, 노끈으로 몸을 결박한 뒤 자루에 넣어 유기한 방식이 신정동 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또한 '노들길 살인사건' 역시 동일범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관성은 어디까지나 추정 단계에 머물렀으며, 2025년 경찰의 공식 발표에서도 이들 사건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정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사성은 참고 자료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결론

신정동 엽기토끼 사건은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미제 강력사건이었습니다. 2005년 두 여성의 안타까운 희생, 그리고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별도의 사건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얽히며 대중에게 각인되었고, 결국 유전자 감정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수사기관의 집요한 추적 끝에 2025년 11월 마침내 1·2차 살인 사건의 범인이 특정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이미 사망하여 화장된 범인의 생전 검체를 40여 곳의 병의원을 탐문해 끝내 확보해낸 과정은, 장기 미제사건 해결에 있어 수사기관의 끈질긴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다만 정작 대중에게 사건명을 안겨준 2006년 5월의 '엽기토끼 납치미수' 사건의 범인은 별개의 인물로 확인되었을 뿐, 그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못한 채 공소시효 만료로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번 사건 해결이 완전한 마침표가 아니라,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는 부분적 해결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례는 과학수사 기술의 발전이 시간의 벽을 넘어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뜻깊은 성과로 기록될 것입니다.